1905년 민간에서 설립한 최초의 고등교육기관,
보성전문학교가 개교하였습니다.
법률학전문과와 이재학전문과, 2개 학과를 운영했으며
근대적 법학 교육 및 경영경제학 교육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3.1운동의 선두에 서다
1919년 3.1운동 당시 보성전문학교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자로
독립선언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 선생은 보성전문학교의
경영자였으며, ’조선독립신문‘의 사장 윤익선은
보성전문학교의 교장으로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3.1운동 당시 학생대표로서 학생층의 시위를 이끈 강기덕 역시 보성전문학교의 재학생이었습니다.
당시 다수의 학교 관계자가 투옥되어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독립운동을 선도한 의로운 역사로 남았습니다.
안암동 시대의 개막
1932년 인촌 김성수 선생이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했습니다.
인촌 선생은 안암동에 6만 평 규모의 캠퍼스를 조성하고
본관을 건축하여 1934년 안암동 시대를 개막했습니다.
3년 뒤인 1937년, 개교 30주년을 맞아 전 민족의 성금을
모아 도서관을 건립했으며, 1938년 대운동장을 완공하며
고려대학교의 터전을 닦았습니다.
종합대학 ‘고려대학교’ 설립인가
보성전문학교는 해방 이후 1년 만인 1946년 미군정청
문교부의 인가를 얻어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고, 교명을
고려대학교로 개칭하였습니다. 정법대학(정치학과,
법률학과), 경상대학(경제학과, 상학과), 문과대학(국문학과,
영문학과, 철학과, 사학과) 3개 단과대학, 8개 학과를 갖추며 종합대학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대구 ‘고려대학교’ 임시 교사 운영
1951년 9월 6.25 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피난지 대구에
임시교사를 마련하고 피난지에 모인 교수진과 학생들을 모아
대학을 운영했습니다. 1952년에는 농림대학을 신설하고,
기존 문과대학에 수물학과, 화학과, 생물학과 등을 신설하여
문리과대학으로 개편하며 4개 대학, 13개 학과로 대학
규모를 확장했습니다. 학생들은 ‘아남민국 국회 제102차
본회의’라는 명칭의 제2회 모의국회를 개최하거나,
‘T·S 엘리엇 에세이 강독모임’을 운영하고, ‘경상학보’를
창간하는 등 피난지에서도 대학 문화를 조성해 나갔습니다.
‘자유·정의·진리’ 이념 정립
1955년 5월 5일 본교는 개교 50주년을 기념하며 ‘자유·정의·진리’ 이념을 공표했습니다. 인간적 ‘자유’의 실현, 사회 속의 ‘정의’ 실현, 학문 연구에서의 ‘진리’ 탐구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교가도 제정되었습니다. 1958년 5월 5일에는 고려대학교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교기’와 ‘교장’을 공표했습니다. 교기는 크림슨색 바탕의 깃발로, 테두리를 금빛 술로 장식한 형태로 중앙에는 ‘교장’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교장’은 방패형으로 상부에는 자유·정의·진리 문구를 새기고, 하단에는 하얀색 배경 위에 본교의 상징동물인 호랑이를 그려 넣었습니다.
4.19 혁명의 선봉에 서다
1960년 4월 18일. 3천여 명의 고대생이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며 시위에 나섰습니다. ‘4.18 고대생 의거’는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자랑스러운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날의 치열한 기록을 담은 ‘4.18 부상자 명단’은 202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의과대학 설립과 종합발전계획의 실행
1971년 12월 우석학원을 병합하며 의과대학 및 병설 의학기술초급대학과 우석병원 등을 인수했습니다. 이로써 고려대학교는 3개 대학원, 7개 단과대학, 병원 등 6개 부속기관, 16개 부설연구기관을 구축하며 종합대학의 규모를 갖추었습니다. 확장된 조직을 바탕으로 1970년대 장기종합발전계획을 실행하며 “지성과 야성”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긴급조치와 휴교령
1975년, 2천여 명의 고대생이 유신 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섰습니다. 위기를 느낀 정부는 본교를 대상으로 4월 8일 긴급조치 7호를 발동하며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교정에는 군인들이 주둔했으며, 일체의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었습니다. 긴급조치 발동으로 1개의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진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으며, 치열한 반유신 투쟁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세종캠퍼스 설립인가
본교는 1979년 9월 19일, 문교부로부터 조치원읍에 분교를 설립할 것을 인가받았습니다. 그리고 1980년 3월 첫 신입생이 입학하여 세종캠퍼스의 문을 열었습니다. 세종캠퍼스의 설립은 정부의 수도권 인구분산 정책에 부응하며 시작되었지만, 중부권을 중심으로 인재를 길러내는 ‘새로운 고려대학교’를 키워나가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녹지캠퍼스 조성과 안암병원의 개원
1991년, 녹지캠퍼스와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건립되었습니다. 1991년 3월부터 안암동 녹지캠퍼스에서 의과대학의 첫 학기가 시작되었으며, 1991년 10월에는 안암병원이 개원했습니다. 녹지캠퍼스의 개발은 1985년부터 계획된 본교 발전계획의 일환으로, 분산된 캠퍼스를 통합하여 종합적인 발전을 이끌고자 하는 포부를 담고 있었습니다. 1988년 7월, 중장기 발전계획이 확정 발표되었으며, 이를 통해 본교 발전의 비전과 미래 지향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의료원 및 각 캠퍼스의 발전, 교육과 연구의 활성화, 국제 학술 교류, 시설 확충 등 2005년의 100주년을 맞이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개교 100주년
2005년, 고려대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글로벌 KU 프로젝트'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지난 100년을 민족의 고대로 정의하고, 다가오는 100년은 세계적인 고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비전을 공유했습니다. 2005년 5월 5일, 개교 100주년 기념식은 새롭게 조성된 중앙광장에서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국내외 대학 총장 200명, 주한 외국 대사, 해외 교우, 국회의장 및 교우 등 많은 귀빈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습니다. 개교 100주년은 본교가 '대학 구조의 세계화'와 '학문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 순간이었습니다.
단과대학 및 대학원 상징 개발
개교 111주년을 맞이하여, 고려대학교는 모든 단과대학 및 대학원의 디자인을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2016년 기준으로 22개 단과대학의 전통과 교육철학을 반영하여 각 대학을 대표하는 디자인을 제작하였으며, 이를 통해 고려대학교의 역사 속에서 성장해온 각 대학의 역사와 다양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QS 세계대학평가 67위
본교는 2016년 세계 대학 순위에서 처음으로 100위권에 진입한 이후, 불과 5년 만인 2020년 69위를 기록하며 60위권에 도달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어 2025 QS 세계대학평가에서도 세계 67위를 기록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본교는 세계적인 연구중심 대학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고, 글로벌 학문 분야에서 중요한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져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120년을 향한 도약
2023년 5월 5일 '개교 120주년 도약을 위한 비전선포식'이 열렸습니다.
120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지식 체계를 구축하고,
미래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자리였습니다.
2025년 고려대학교는 새로운 120년을 맞이하며 그동안 쌓아온 전통과 성과를 토대로
교육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미래 사회에 공헌하는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대학'으로
힘차게 도약할 것입니다.